그림자 군대의 유산: 냉전의 암살단에서 마약 전쟁의 사냥개로
1980년대 엘살바도르 내전 당시 미국이 지원한 암살단의 잔혹 행위가 오늘날 온두라스에서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핵심 요약
- 1980년대 미국은 냉전 논리 아래 엘살바도르의 우익 군사정권과 '암살단'에 6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하며 7만 5천 명의 희생을 방조했습니다.
- 암살단 지휘관 다수는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미군 미주학교(SOA)에서 훈련받았으며, 이는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을 증명합니다.
- 엘살바도르 모델은 '반공'에서 '마약과의 전쟁'으로 명분만 바뀐 채 2009년 쿠데타 이후 온두라스에서 재현되었습니다.
- 온두라스의 미국 훈련 특수부대(TIGRES 등)는 베르타 카세레스와 같은 환경 및 원주민 운동가들을 살해하는 데 연루되었습니다.
- 법적 제재(리히 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예외 조항을 적용하며 인권 유린 부대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1980년대 엘살바도르에서 미국이 후원한 암살단이 자행한 국가 테러의 작동 원리는 냉전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공산주의와의 전쟁'이라는 깃발은 '마약과의 전쟁'으로 바뀌었을 뿐, 그 피비린내 나는 방법론은 21세기 온두라스에서 환경 운동가와 원주민 지도자들을 겨냥하며 유령처럼 되살아났다. 이 글은 이름과 장소는 바뀌었지만, 제국의 그림자 군대를 움직이는 추악한 매뉴얼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기록한 비망록이다.
핵심 사실
- 기간: 엘살바도르 내전은 공식적으로 1980년부터 1992년까지 12년간 지속되었다.
- 미국 원조: 이 기간 동안 미국은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에 약 60억 달러(하루 평균 150만 달러)를 지원했다.
- 희생자: 내전으로 약 75,000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었고, 8,000명 이상이 실종되었다. 유엔 진실위원회는 이 폭력의 85%가 정부군 및 연계된 우익 암살단 소행이라고 밝혔다.
- 암살단 훈련: 엘 모소테 학살을 자행한 아틀라카틀 대대를 포함, 수많은 엘살바도르 장교들이 파나마와 미국의 미군 미주학교(School of the Americas, SOA)에서 훈련받았다.
- 현대의 메아리: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 이후, 미국은 인권 유린으로 악명 높은 온두라스 보안군에 대한 지원을 지속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2016년 환경 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 암살에 연루되었다.
역사적 장면: 피로 물든 커피 농장
1980년 3월 24일, 산살바도르의 한 병원 예배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가 제단 위에서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의 심장을 꿰뚫은 총알은 단 한 발이었다. 불과 하루 전, 그는 설교를 통해 엘살바도르 군인들에게 "신의 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어떤 군인도 신의 법에 어긋나는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탄압을 멈추십시오!"라고 외쳤다. 그의 죽음은 내전의 서막을 연 신호탄이자,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벌일 끔찍한 전쟁의 예고편이었다.
당시 엘살바도르는 '14가문(Las Catorce Familias)'으로 불리는 소수 지배계급이 국가의 부와 토지를 독점하는 극심한 불평등 사회였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노동자들은 빈곤 속에서 신음했고, 1970년대 들어 토지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학생, 노동조합, 농민 조직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군부와 지주 계급은 폭력으로 응답했다. 1979년 10월, 개혁 성향의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카를로스 움베르토 로메로 장군의 독재를 무너뜨렸지만, 이는 더 큰 피바람을 몰고 왔다.
극우 세력은 곧바로 권력을 장악했고, 군과 경찰,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에스쿠아드론 데 라 무에르테(escuadrón de la muerte)', 즉 '죽음의 부대(암살단)'는 조직적인 납치, 고문, 살해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좌파 게릴라 조직인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회 기반, 즉 '물을 빼서 물고기를 말려 죽이는' 전략이었다. 교사, 학생, 농민, 신부, 수녀, 노조 활동가들이 길거리에서, 집에서, 교회에서 사라져갔다. 그들의 시신은 종종 끔찍하게 훼손된 채로 길가에 버려졌다.
이 참극의 배후에는 워싱턴 D.C.가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엘살바도르 내전을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좌파 정권과 쿠바,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냉전의 최전선으로 규정했다. 의회의 반대와 인권 유린에 대한 수많은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을 '민주주의의 보루'로 포장하며 막대한 군사 원조를 쏟아부었다.
"우리가 엘살바도르를 돕지 않는다면, 우리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연이어 쓰러지는 도미노를 보게 될 것입니다." — 로널드 레이건, 1983년 의회 연설
이 말은 현실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었다. 미국이 '돕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가 테러 기구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작동 원리: 워싱턴의 살인 면허
미국의 지원은 단순히 돈과 무기를 보내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것은 살인 기술과 이데올로기를 이전하는 체계적인 과정이었다. 이 과정의 핵심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있었다.
- 자금 및 장비 지원: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엘살바도르에 제공된 60억 달러의 원조는 정부군이 FMLN에 비해 압도적인 화력을 유지하게 했다. 헬리콥터, 소총, 통신 장비 등은 모두 'Made in USA'였다.
- 훈련: 가장 악명 높은 것은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위치한 미군 미주학교(SOA, 2001년 '서반구 안보협력연구소' WHINSEC으로 개칭)였다. 이곳에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군 장교들에게 전투 기술뿐만 아니라 '대게릴라전' 수행에 필요한 심문(고문) 기술, 심리전, 정보 수집 등을 교육했다. 유엔 진실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내전 기간 중 최악의 인권 유린 사건에 연루된 엘살바도르 장교 중 3분의 2가 SOA 출신이었다.
- 정보 공유 및 자문: CIA 요원들과 미군 고문단은 엘살바도르 현지에 상주하며 군 정보기관과 긴밀히 협력했다. 이들은 '반군 용의자' 명단을 작성하고 공유했으며, 군사 작전 계획 수립에 직접 관여했다. 이는 사실상 암살단의 표적 선정을 돕는 행위였다.
이 매뉴얼이 낳은 가장 끔찍한 결과 중 하나는 1981년 12월의 엘 모소테(El Mozote) 학살이다. 미군 특수부대 '그린베레'에게 직접 훈련받은 정예 대게릴라 부대인 아틀라카틀(Atlacatl) 대대는 모라산 주의 엘 모소테 마을과 인근 지역에서 사흘간 약 1,000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남자들은 끌려가 총살당했고, 여성들은 강간 후 살해되었으며, 아이들은 부모가 보는 앞에서 무참히 살해당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이 사건을 '좌파 게릴라의 선전'으로 치부하며 부인했지만, 1992년 진실위원회의 유해 발굴을 통해 그 참상이 세상에 드러났다.
엘 모소테는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었다. 미국은 인권 유린 보고가 접수될 때마다 '개선되고 있다'거나 '조사 중'이라는 말로 의회를 안심시키고 원조를 계속했다. 살인 면허는 그렇게 워싱턴의 서류 작업과 정치적 수사를 통해 발급되고 갱신되었다.
현재의 거울: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이름의 탄압
냉전이 종식되고 1992년 차풀테펙 평화협정으로 엘살바도르의 총성은 멎었다. 하지만 제국의 그림자 군대 매뉴얼은 폐기되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적을 만나 업데이트되었을 뿐이다. 그 거울 이미지는 2009년 6월 28일 온두라스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날, 민주적으로 선출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어 코스타리카로 강제 추방되었다. 최저임금 인상, 베네수엘라와의 석유 협정 등 친서민 정책을 폈던 셀라야는 온두라스의 기득권층과 워싱턴의 눈엣가시였다. 쿠데타의 주역인 로메오 바스케스 장군은 바로 그 미군 미주학교(SOA) 졸업생이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쿠데타를 공식적으로 비난했지만, 행동은 정반대였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자서전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에서 쿠데타 이후 셀라야의 복귀를 막고 새로운 선거를 통해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는 사실상 쿠데타 정권을 인정한 것이었다. 미국은 온두라스에 대한 군사 및 경찰 원조를 잠시 중단하는 시늉만 했을 뿐, 곧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원조를 재개하고 오히려 증액했다.
엘살바도르의 '반공'이 온두라스에서는 '마약 단속'으로 대체되었다. 미국의 자금과 훈련은 온두라스의 새로운 특수부대들, 특히 TIGRES(정보 및 특수 안보 합동 부대)와 군사경찰(PMOP)로 흘러 들어갔다. 이 부대들은 미 특수부대와 마약단속국(DEA)으로부터 직접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엘살바도르의 암살단처럼, 이들은 마약 밀매 조직뿐만 아니라 쿠데타에 저항하는 사회 운동가, 언론인, 원주민 지도자, 환경 운동가들을 표적으로 삼기 시작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2016년 3월 2일, 세계적으로 저명한 환경 운동가이자 골드만 환경상 수상자인 베르타 카세레스(Berta Cáceres)의 암살이다. 그녀는 원주민 렌카족의 땅에 과달키비르 강을 막는 아과 사르카(Agua Zarca) 댐 건설에 맞서 싸워왔다. 암살자들은 그녀의 집을 급습해 총을 난사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암살 계획에 댐 건설 회사(DESA)의 고위 임원들과 온두라스 군 정보기관이 깊숙이 개입했으며, 암살범 중 최소 한 명은 미국에서 훈련받은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베르타 카세레스는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강의 영혼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영혼을 지키는 전사입니다."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온두라스는 세계에서 환경 운동가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 중 하나로 남아있다.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7년까지 120명 이상의 환경 운동가가 살해되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보안군은 이러한 폭력의 가해자이거나 방관자 역할을 해왔다.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엘살바도르의 과거와 온두라스의 현재는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다. 제국의 대리 통치 매뉴얼은 시대를 넘어 일관된 구조를 보여준다. 다음 표는 두 시대의 평행 이론을 요약한다.
| 항목 | 과거: 엘살바도르 (1980년대) | 현재: 온두라스 (2010년대-현재) |
|---|---|---|
| 미국의 명분 | 반공주의, 공산주의 도미노 방지 | 마약과의 전쟁, 지역 안정 |
| 미국 주무 기관 | 중앙정보국(CIA), 국방부, 미군 고문단 | 국무부, 마약단속국(DEA), 남부사령부(SOUTHCOM) |
| 미국산 훈련소 | 미군 미주학교 (School of the Americas, SOA) | 서반구 안보협력연구소(WHINSEC), 합동 특수작전 부대 |
| 현지 대리인 | 군부, 국가방위대(GN), 아틀라카틀 대대 | 군부, 군사경찰(PMOP), TIGRES 특수부대 |
| 법적 방패 | 인권 유린 보고 부인, 의회에 대한 대통령의 '인증' | 리히 법(Leahy Law)의 예외 조항 적용, '국가안보' 면책 |
| 주요 희생자 | 농민, 학생, 노조원, 성직자, 지식인 | 원주민 지도자, 환경 운동가, 언론인, 인권 변호사 |
| 저항 세력 | FMLN, 해방신학 그룹, 민중 조직 | 온두라스 원주민 민중 협의회(COPINH), 시민사회단체 |
| 결과 | 평화협정, 제한적 사법처리, 만성적 폭력 사회 | 지속적인 불처벌, 민주주의 후퇴, 사회운동 탄압 |
희생자
군사 지원
불처벌
자원 착취
변하지 않은 것은 명분 뒤에 숨은 진짜 동기다. 냉전 시기 엘살바도르에서는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후신 기업들을 포함한 미국 자본의 이익과 지정학적 패권 유지가 중요했다. 21세기 온두라스에서는 광산, 수력발전, 아프리카 야자 농장 등 다국적 기업의 이익 보호가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연막 뒤에 가려져 있다.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은 바뀌었지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구조적 폭력의 청사진은 그대로다.
무엇이 패턴을 깨뜨리는가
이 절망적인 반복의 역사 속에서도, 패턴을 깨고 균열을 내려는 시도는 계속 존재한다. 이것들은 거대한 구조에 맞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저항이다.
- 진실과 기억을 향한 투쟁: 엘살바도르의 유엔 진실위원회처럼, 과거의 범죄를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은 불처벌의 벽에 금을 낸다. 학살 현장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인권 단체들의 활동은 국가가 지우려는 역사를 복원한다.
- 국경을 넘는 연대: 베르타 카세레스의 딸들은 전 세계를 돌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러한 국제적 압력은 온두라스 사법부가 마지못해 일부 하급 실행범들을 처벌하고, 암살의 '설계자'들을 기소하게 만들었다. 이는 결코 완전한 정의는 아니지만, 완전한 불처벌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 정보의 민주화: 과거 CIA의 비밀 문서는 수십 년이 지나 기밀이 해제되어야만 볼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내부고발자, 위키리크스, 그리고 현지 언론인과 활동가들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실시간으로 퍼져나간다. 미국이 지원한 무기가 시위대를 향하는 장면이 스마트폰으로 촬영되어 전 세계로 송출되는 시대다.
- 제국의 심장부에서의 저항: 미국 내에서도 SOA/WHINSEC 폐쇄를 요구하는 'SOA Watch' 같은 단체들이 수십 년째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포트 베닝 기지 앞에 모여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미국의 책임을 묻는다. 이들의 목소리는 작을지 몰라도, 제국의 위선적인 자기기만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엘살바도르에서 시작된 피의 연대기는 온두라스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국가 안보'라는 이름 아래, 제국의 그림자 군대는 언제든 새로운 명분과 새로운 대리인을 찾아 다른 땅에서 다시 조직될 수 있다. 이 반복되는 비극의 고리를 끊는 것은 결국 기억하고, 기록하고, 연결하려는 끈질긴 노력에 달려 있다. 침묵 당한 자들의 목소리를 되살리고, 학살의 청사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 그것이 과거의 유령이 미래를 잠식하지 못하게 막는 유일한 길이다.
출처 및 더 읽어보기
- United Nations, From Madness to Hope: the 12-year war in El Salvador: Report of the Commission on the Truth for El Salvador. (1993). UN Peacemaker
- Armstrong, Robert, and Janet Shenk. El Salvador: The Face of Revolution. South End Press, 1982.
- Grandin, Greg. The Last Colonial Massacre: Latin America in the Cold War.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1.
- Dana Frank, The Long Honduran Night: Resistance, Terror, and the United States in the Aftermath of the Coup. Haymarket Books, 2018.
- Global Witness, "Honduras: the deadliest country in the world for environmental activism". Global Witness Report
- The Intercept, "Berta Cáceres's Killers Were Trained by the U.S., Honduran Military Vet Says". The Intercept
자주 묻는 질문
- 엘살바도르 내전에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 미국은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엘살바도르 정부에 60억 달러 이상의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했습니다. 이 지원은 군부와 연계된 '암살단'이 7만 5천 명 이상을 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냉전기 반공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 엘살바도르 '암살단'의 배후는 누구였나요?
- 암살단은 엘살바도르 군대, 정보기관, 그리고 로베르토 다부이손과 같은 극우 정치인들이 조직하고 운영했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로부터 훈련, 자금, 정보를 지원받았으며,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미군 미주학교(SOA)에서 많은 지휘관이 교육받았습니다.
- 엘살바도르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얼마나 되나요?
- 12년간의 내전으로 약 7만 5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8천여 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엔 진실위원회는 폭력 행위의 85% 이상이 정부군과 우익 암살단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왜 이 역사는 오늘날에도 논쟁의 대상이 되나요?
-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권 유린을 비판했지만, 실제로는 '국가 안보'와 '반공'을 명분으로 지원을 계속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당시의 책임자 처벌은 미미하며,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명분으로 유사한 형태의 군사 지원을 계속하며 과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 이 사건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 엘살바도르의 폭력 구조와 불처벌 문화는 현재의 갱단 폭력(MS-13, Barrio 18)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이 엘살바도르에서 사용했던 대리인 지원 모델은 온두라스 등 다른 중미 국가에서 환경 운동가와 원주민 지도자 탄압에 그대로 적용되며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